로더

스킵 네비게이션


2023 행사 · 전시

생동(生動)
20세기 이후 인류는 현대과학의 편리함과 물질의 풍요로움을 누리는 반면 예기치 않은 역병과 고통을 대가로 치르게 되었다.
현대의 예술인들은 욕망의 표현을 미의 본질로 여김에 따라 그 이면에서는 공동체적 삶에 대한 회의와 예술의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우리는 ‘개인의 욕망과 감정을 표현하고 대중의 감동을 얻어내는 것이 예술’이라는 인식하에 서예의 본령인 ‘심성순화’를 잊어버리지 않았는가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인류의 삶과 예술은 문명사회에 맞는 사조(思潮)를 지향해야 한다.
인간과 자연이 순화하고, 물질과 정신, 절제와 욕망이 균형을 이루며, 개인과 대중이 공명하는, 안정되고 조화로운 세계를 향한 탐색과 적극적인 실천이 이루어져야 한다.
동양사상은 생명을 중시하며, 생명의 가치는 덕에 있다. 덕은 사람과 자연을 하나로 보고, 사랑과 정의, 포용으로써 삶을 진실하고 이롭게 한다. 동양예술은 절제와 조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며, 서예는 이러한 토양에서 발전한 예술이다. 문자의 조형성을 넘어 내재된 덕성에 더 큰 미적 가치를 두며, 감정과 감성의 순화 및 인간과 천지 사이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세계는 인간중심ㆍ자기중심의 예술로부터 도의(道義)중심의 예술로 전환,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참다운 예술이란 방탕한 감정의 노출이 아니라, 함축과 절제, 조화의 정신으로 신선한 세계를 향하고, 자발적 자유의식을 일깨워주는 바, 서예는 그 핵심을 ‘기운생동’으로 집약한다.
생명을 중시하는 동양예술, 특히 서예는 천지의 화기(和氣, 조화로운 기)와 질서를 본받는다. 기는 음양ㆍ강유로 설명되며, 음악처럼 고저ㆍ경중ㆍ청탁 등의 변화와 조화로써 만물을 화육(化育)한다. 서화가는 기의 운행이치를 체득한 바를 바탕으로 심성을 도야하고 필묵예술을 구현하는바, 자기의 몸과 마음, 서화작품은 모두 화기의 유무에 따라 생명력과 가치가 좌우된다.
화기로써 생명을 얻은 서화 작품은 대중으로 하여금 음악적 리듬과 자유로움, 신선함과 기쁨을 누리게 한다. 현대예술사조와 같이 말초적 호기심과 쾌락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또 하나의 생명으로 자연 소박한 마음과 고상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다.
‘생동’을 주제로 펼치는 이번 행사를 계기로 생명에 대한 서예인들의 사색과 실험이 지속되기를 바라며,
나아가 지구촌에 K-서예의 새바람을 일으켜 우주자연의 활기를 북돋우고, 조화롭고 안정된 사회를 이룩하는 초석이 되기를 희망한다.